1장
바울 서신은 일반적으로 인사말 뒤에 감사의 제목들이 나오지만, 갈라디아서는 감사를 생략하고 곧바로 편지를 쓴 이유가 나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가 그가 전한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인해 혼란스러웠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습니다(6-7절). 왜냐하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복음의 정수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가르치며, 바울이 율법의 의무를 생략한 채 믿음으로 구원이 가능하다고 가르친 것은 이방 그리스도 이들의 부담을 덜어 그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바울을 모함합니다(10절). 그러나 믿음에 율법의 행위를 추가한 메시지야말로 구원교리와는 상관없는 듣기 좋은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2장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교회'와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한 '안디옥교회'가 이끌고 나갑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주로 유대인 출신으로 할례와 음식에 대한 율법을 중시했지만 안디옥교회는 이방인들로 구성돼 율법에 대해서는 자유로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교회 간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들과 함께 복음의 진리를 수호 할 것과 이방인 선교의 중요성을 논의했습니다(2절). 바울은 계시에 순종하며 겸손하게 자신이 전파한 복음과 그 과정에 대해 설명했고,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섬기는 대상 혹은 영역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았기에 바울의 사역을 존중했습니다(7~8절) 이처럼 교회를 이끌던 리더들의 성숙한 인격과 탁월한 지도력은 동역을 통한 복음 전파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했습니다.
3장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답을 제시하며, 율법은 그 해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즉,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이지, 율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율법을 행하는 자는 살게 된다는 말씀(12절)은 사실이지만,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으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려고 했다면 우리 모두는 결코 이룰 수 없었으 것입니다. 결국 율법은 의로운 길로 이끄는 통로가 아니라, 막다른 길로 이끄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끝은 정죄(10절)이며, 율법으로 사는 삶의 결과는 저주입니다(13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속량으로 율법의 막다른 길로부터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신칭의의 복을 누릴 수 있고,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4장
바울은 일상생활의 비유를 들어 양자됨의 특권에 대해 설명합니다. 상속자의 경우 장성하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지만, 미성년자 신분에서는 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1절). 여기서 바울이 강조한 부분은 종살이라는 개념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 세상의 초등 학문 아래서 종살이했지만, 하나님의 때에는 종살이를 벗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린다고 설명합니다(3-5절).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특권을 '아들의 명분'(5절)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며, 이 호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습니다(6-7절).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종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만 해도 큰 은혜입니다. 하물며 아들로 양자 삼아 주셨다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5장
바울은 성도들이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죄악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끝에 가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21절). 이는 구원이 행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바울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행위들에 의해 구원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마땅히 제거돼야 할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뜻을 무시하고 방종을 일삼던 일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과 또한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서운 경고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으로 행합니다(25절). 입으로 아무리 신앙을 고백해도 계속해서 정욕과 탐심대로 산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6장
바울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행동(5:25)에 대해 계속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따라 살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도 헛된 영광을 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들은 남들의 잘못은 비판하지만 스스로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거나(1절). 겉으로만 고상한 척하고 스스로를 속이며(3젤, 남에게 보이려고 자랑을 일삼습니다(4절). 하지만 이러한 태도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성령께서 원하시는 삶을 심고, 성령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삶을 추구하는 자에게 열매 맺게 하셔서 영생을 수확하실 것입니다(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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