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세 친구들 중 최연소자로 추정되는 소발이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말 수가 적었으나, 그 역시 원칙론적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감히 단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며,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욥이 결백을 주장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심각한 죄악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소발의 견해는 앞의 두 친구의 생각과 별로 다를 바 없었습니다.
12장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여 설교조로 책망하려 드는 친구들의 말을 듣자 욥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친구들의 독선적인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혜가 친구들의 지혜에 비해 조금도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친구들은 원칙론적인 논리만 장황하게 설명한 반면에 욥은 논리로써는 납득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욥은 자신의 고난의 원인과 의미를 알고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3장
욥은 친구들의 거만하고 독선적인 자세를 나무라고 침묵을 명한 후에 자신은 오직 하나님께 억울함을 송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까닭은 하나님이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신다는 확신과 자신은 결백하다고 하는 자신감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14장
욥은 덧없는 인생을 노래하며 이런 인생에게 어찌하여 견디기 힘든 시련을 굳이 허락하시는가 하고 하나님께 반문하였습니다. 본문은 전통주의적 염세주의 인생관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인생이 스올에서 다시 나올 수 있다고 하는 낙관적이고 소망적인 인생관의 여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은 욥의 내면을 탄식과 절규로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15장
친구들의 책망이 욥으로 하여금 더욱 자기 변호에 몰두하게 만들었듯이, 욥의 반박을 들은 친구들은 더욱 욥을 공박하고 나섰습니다. 본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의문문을 연속적으로 나열하여 욥을 직접 고발하기도 하고, 3인칭에게 말하는 수법으로 완곡하게 빗대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면서도 욥에게 닥친 재난을 특정한 죄와 연결시키려는 생각은 결코 철회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16장
엘리바스의 책망을 들은 욥은 곧장 엘리바스를 위시한 친구들에게 조소를 보냅니다. 친구들이 아무리 몰아붙여도 욥의 귀에는 안위자를 가장한 그들의 책망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자신을 곤고케 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에게 어떻게 하여 그토록 끔찍한 재앙이 임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욥은 이 재앙을 겪게 하신 분도, 또 그것을 벗어나게 하실 분도 여호와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욥은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헤아려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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